Page 135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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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복사꽃’, 그것은 곧 그의 깨달음의 상징이며 또한 시 정신의 핵심이 된다.
              만해의 오도체험은 이후 그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전의
            불교적 영역에서 민족적 영역으로 관심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리와

            이타가 하나로 통합되는 인식, 즉 출출세간적 입장을 견지하는 대승불교의

            자타불이의 보살행을 실천한 그의 적극적인 자세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보살
            행의 실천근간은  모든 차별과 분별을 넘어서는 깨달음이다. 하여 무한한 사
            랑을 내면화하여 인식한 만해가 두두물물의 아름다운 조응에 주목하는 것

            은 자연스런 결과라 할 수 있다. 님과 나의 관계가 하나로 어우러진 합일의

            내적 경지가 「나의 꿈」에서 역설적으로 잘 묘사되고 있다.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이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사랑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사랑의 첫발은 경이로움에
            의한 지속적인 관심이다. 사랑하는 이의 주변을 맴돌며 떠나지 않는 것, 그

            것은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소망이다. 여기에서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일체

            감을 획득하는 정경을 통해 나타난다. 화자인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
            스럽게 님과 한몸이 된다. 새벽별, 바람, 귀뚜라미로 변하여 나는 님이 어떤
            장소에 존재하든지 조용히 그곳에 함께하여 한 몸을 이룬다. 생명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생성이듯이, ‘님’ 또한 끊임없이 기다려지고 그리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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