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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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집을 지을 수 없다며 북향으로 지은 집이다. 하여 민족자존의 역사적 공
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심우장은 만해가 비밀 항일 결사대 ‘만당’을 결성하
고 총재가 되어 조선의 독립과 불교대중화를 통한 민족의 해방, 그리고 자성
을 찾으려 한 삶의 회향처였다 할 수 있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
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겠느냐?”며 심우장의 냉돌 위에서 꼿꼿하
게 앉아 지냈다하여 만해에게는 ‘저울추’란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이러
한 암울한 시대를 지켜보면서 만해는 자신의 심정을 「심우장」에서 다음과 같
이 표현하였다.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시 분명하다면
차라리 찾지나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암울한 시대에 만해의 외로운 결기와 단단하고 매운 자아성찰을 보여 준
다. 일체종지가 모두 자신 안에 있으므로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밖에서 소를
찾는다고 법석을 떠니 우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여의 세계는 어디에 따
로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다 부처의 법신이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또 다시 방황하지 말고 마음의 결의를 굳건히 지키겠다는 만해의 결연
한 다짐으로 읽혀진다. 그러한 사실은 일제말기 많은 민족지도자들과 지성인
들이 일제의 회유에 변절했지만 공약삼장의 하나처럼 최후의 일각까지 꼿꼿
한 지조를 지키며 불굴의 정신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다 간 그의 올곧은
삶에서 반증된다. 바로 여기에 그의 위대한 민족자존의 정신이 있다할 것이다.
조화와 화해의 추구는 만해가 선시를 통해 시재를 탁마했다는 사실과 무
관하지 않다. 자연을 통한 선적 수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그의 선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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