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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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인욕과 보시의 보살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애틋한 중생구제의 대승적 보살도 정신이 상징적인 배의 이미지로 잘 표현되

           고 있다. ‘나룻배’는 사바세계를 건너는 방편으로 존재한다. 사벌등안捨筏登
           岸이라 하여 차안에서 열반의 피안으로 가면 버려지고 말 존재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만해는 자기 존재를 ‘나룻배’로 한정하여 한없이 낮춘다. 비록 흙

           발에 짓밟힐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날마다 낡

           아가면서도 님을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기다림은 인욕과 보시의 실천적 사랑
           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배로 상징되는 삶의 자세는 자타불이의 동체적 관계
           로 세계를 인식한 결과이다. 여기에 만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중생구제

           의 세계 즉 출출세간의 시적 미학의 세계가 있다.

             한편, ‘심우尋牛’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
           한 선종의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로,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의미
           를 지닌다. 만해는 해방을 한해 앞 둔 1944년 서울의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

           적했다. 심우장은 일제 강점기에 만해가 돌집[조선총독부]이 마주보이는 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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