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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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손바닥과 주먹으로 나눠놓고 하나는 옳고 하나는 그르다 한다면 우
           스운 얘기 아니겠는가? 달마 스님이 법을 전할 때 2조 혜가 스님이 세 번
           절하자 “너는 골수를 얻었다.”고 인가하였는데, 사실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미 근본법은 잃어버렸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이 미소를 지었는데,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셨을 때 이미 진실한
           법은 잃어버렸다.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고 2조가 세 번 절한 것조차
           틀렸는데 여래선이니 조사선이니 하는 명칭이야 두말해 무엇 하겠는가? 게

           다가 둘을 놓고 우열을 논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어찌 부처님

           과 달마 스님의 본뜻이 연꽃과 절 세 번에 있겠는가? 드러난 모습이 전부
           인 줄 알고 그것을 불법의 실제인 양 오인한다면 이는 우는 아이 달래려고
           흔든 누런 나뭇잎을 진짜 금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구경처究竟處를 바

           로 보아 언어와 형상을 초월한 여래의 본뜻을 성취하는 데 뜻을 두어야지,

           어찌 구구한 문자와 모양에 얽매여 같고 다름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논하
           겠는가?
             여래선과 조사선으로 토막을 내놓고 그 우열을 논하는 자들이 근거로

           삼는 바를 살펴보면 앙산과 향엄 스님의 대화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

           다. 향엄 스님은 스스로 깨닫지 못함을 한탄하고 위산 스님을 떠나 남양南
           陽 혜충慧忠 국사國師의 유적지에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풀을 베다 던
           진 기와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쳐 난 소리에 크게 깨쳤다. 다시 위산을 찾은

           향엄을 앙산이 의심하여 깨친 경지를 묻자 그는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작년 가난은 가난함도 아니요                 去年貧 未是貧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함이라.               今年貧 是始貧.

                작년엔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去年貧 無卓錐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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