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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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엔 송곳마저 없네. 今年貧 錐也無.
그러자 앙산이 “사형이 여래선은 알았다 하겠지만 조사선은 꿈에도 보
지 못했소.”라고 했다. 이 일을 두고 “여래선보다 높은 조사선이 따로 있는
것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그렇게 오해한 사람들
이 왕왕 있었다. 허나 이는 법거량이다. 그걸 모르고 여래선 밖에 조사선
을 따로 세워 고하심천高下深淺을 논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특
히 우리나라는 진귀조사설의 영향으로 이런 악견이 유독 더하다. 진귀조
사설에 따르면 부처님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지만 구경의 경지까지
는 가지 못하였고 진귀眞歸 조사祖師를 찾아가 최후 구경의 깨달음을 얻으
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처음 얻은 깨달음은 여래선이고 후에 진
귀 조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조사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진귀조사설은 조사의 선법을 높이기 위해 한국에서 창조해낸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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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다. 진정眞靜 국사國師가 지은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의 세 곳에서 진
귀조사설이 거론되었는데 같은 책에서조차 그 말이 앞뒤가 맞질 않는다.
두 곳에서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즉 여래선을 얻고 진귀 조사를
찾아갔다 하였고, 한 곳에선 진귀 조사를 찾아가 조사선을 깨치고 돌아가
서 다시 여래선을 성취했다고 하였다. 같은 책인데도 모순이 심하지 않은
가? 거짓말로 남을 속이려면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법이다. 혹자는 한국 사
람들이 옳게 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못 본 것 아닐까, 또는 한국에만
정확한 기록이 온전히 보존되고 다른 나라에선 그 기록이 망실되었던 것
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료와 증거를 종합해 볼 때
진귀조사설은 조사선을 추앙한 한국의 스님들에 의해 창작된 설임이 자명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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