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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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대흥사 대광명전.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된 후 아암 스님은 물심양면으로 다산에 도움을 주
었다. 다산이 보은산방으로 거처를 옮겨 한 철을 지낸 것도 아암 스님의 배
려 때문이었고, 차를 요구했던 다산의 차 수요를 감당했던 것도 아암 스님
과 그의 제자들이다. 이런 사실은 다산이 1805년 겨울 아암에게 보낸 「이
아암선자걸명소貽兒庵禪子乞茗疏」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요즘 차를 탐내어 약처럼 먹는다오. 글 중에 오묘한 이치
는 육우의 『다경』 3편에서 다 통했고, 병든 속에 큰 탐냄은 결국
노동의 「칠완차」로 해소했소. 설령 (차가) 정기를 침식해 수척하
게 한다지만, 기무경의 말을 잊지 않는다오. (차가) 막힌 것을 뚫
고, 응어리를 풀어 주니 마침내 (나도) 이찬황의 벽癖이 생겼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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