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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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다. 이는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 지눌知訥 화상 이래 그간 불교
계에서 유지해오던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인정하지 않고, 돈오한 다음에는
계속 여여如如할 뿐이고, 경전을 보든 다른 지식을 접하든 돈오상태에 어
떠한 변화도 없다고 했다. 깨닫고 나면 수정할 것도 없고 노력하여 이를 유
지할 것도 없다. 수행자의 세계에서 만일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세
상에 미친 그 충격은 땅이 갈라지고 화산이 폭발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은 그 깨달음에 토대를 두고 거침없이 실천했다. 수행할
때는 세상과 단절하고 한번 눕지도 않고 앉아 삼매경에 드는 장좌불와長
坐不臥를 수년간 지속하며 정진했다. 이치를 말할 때도 폭포수와 같이 거침
없이 설법을 펼쳤다. 말로 하면 마치 본인이 본 다르마dharma를 즉석에서
바로 옮겨 전해주는 것과 같았고, 글로 쓰면 있는 다르마를 그대로 받아쓰
는 것과 같았다. 진리를 자동기술(自動記述, automatic description)하는 것이
었다. 불교계에서도 엄청난 충격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사진 3).
성철 스님의 설법은 어렵고도 쉬웠다. 해인사에서 대중 설법을 하며 펼
친 『백일법문百日法問』은 여전히 어렵고 이를 이해하려면 불교경전과 선불
교를 처음부터 공부해야 한다. 『선문정로禪門正路』는 더 하다. 이 책을 처
음 사들고 읽다가 아득하여 읽기를 그만 둔 것은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도
뛰어난 사람들이 쓴 책이라고 하여 알려지면 알든 모르든 책부터 사는 것
은 그래야 그 세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서 일 것
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책들을 실제 이해하고 터득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쉽다고 하는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의
『신곡新曲, Divina commedia』을 이름부터 멋있는 것 같아 덤벼들었다가 죽
을 때까지 손에 잡았다가 놓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는 어떤 지식인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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