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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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한 경이로운 우주를 담아내는 데 있다.
월하가 그리는 것은 우주의 광활함과 인간의 작음의 대비를 통한 우주
질서의 인식이다. 그래서 그의 시문학에 나타나는 시인의 모습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 하는 사물로 묘사되거나 사물의 일부로 그려진다. 그것은 세
계를 조화롭게 보고자 하는 그의 화엄적 사유의 시심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에 대한 세밀한 관조와 종교적 초월의 경계 속에서 잉태되고 탄생되는
그의 시는 순수 서정시와 동양적 미학을 접목,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다. 그 전형적인 시의 하나가 「목련꽃」이다.
봄이 깊었구나
창밖에 밤비 소리 잦아지고
나는 언제부터선가
잠 못 자는 병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난밤 목련꽃 세 송이 중
한 송이 떨어졌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자연현상에서 우주적 생명감각을 일깨워주는 시편이다. 거대한 이 우주
에서 목련꽃 한 송이는 하찮은 존재이다. 때문에 목련꽃 하나가 사라진다
고 해서 해가 될 것도 없고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그
것을 느끼고 인식한다. 한 송이 목련꽃이 떨어진 것을 보고 우주 한 모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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