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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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열매는 아직 푸르다.
직관과 감성이 보다 정갈하고 고고하게 드러나 있으며 인위적인 행위가
전혀 없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다. 자연의 원리는 인위적
인 힘이 없어도 성숙해 간다. 오히려 인위적인 것이 없어야 온전한 제 모습
을 지닐 수 있다. 시인은 그 익지 않은 열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서 언젠가 가닿게 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유월의 꿈’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세계인데, 시인은 그것을 아직 익지 않은 열매에 비유
하고 있다. 뜰이 있고, 미풍이 지나가고, 흔들리는 가지와 짙푸른 잎새 속
에 아직 익지 않은 감이 감추어져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모
든 풍경은 ‘유월의 꿈이 빛나는 작은 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뜰이야말로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이고, 화자는 이 작은
세계에서 빛나는 유월의 꿈을 포착하는 것이다. 익지 않은 감은 염원하는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상징하지만, 그 자체로서 자연 그대로 완결된
하나의 세계이다. 익지 않은 푸른 감을 매개물로 하여 살아 움직이는 현상
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고, 온전한 모습 속에 존재자로서 자신을 끌
어들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이 시가 함축하고 있는 근본적인 세계이다.
단순한 사물의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대상을 통하여 우주의 원리인 동
시에 선적 사유의 발현이라 할 수 있는 탈속 무애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시적 주체는 정신의 확장과 자유로운 사상의 발현을 획득하게 된다. 서정주
나 유치환과 같이 인간 생명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우주 본질에 대한 종교
적이며 철학적인 성찰로 확장되는 월하의 시는 시적 주체인 나를 어떻게 비
우느냐에 따라 인간의 보다 자유로운 정신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면모는 「나」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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