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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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꽃 한 송이 줄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
게 된다. 즉, 이와 같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우주로 확장되는 내면 풍경은
사물의 일부로 조화롭게 존재하는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때문에 시인에
게 만물은 외적인 면에서 형태가 구별되지만 그 내적 세계에서는 만물이
동일하게 보여 진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거기에 담겨있는 큰 것,
즉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체험하는 것은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이다. 이처
럼 미시적인 안목으로 사물을 그리되, 시어를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시적
세미화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월하의 대표적인 시가 「샘물」이다.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
물아일여의 상상력이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
은 ‘들여다보기’로 하나의 세계를 묘사하거나 ‘사물의 일부’가 되어 그 속에
합일하는 공간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조용한 숲 속에 있는 샘물을 들여
다보는 화자는 그 샘 속에서 하늘, 흰 구름, 바람, 그리고 바다처럼 넓어지
는 모습을 본다.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인 샘물이 하나의 우주가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넓은 우주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작은 자아에 대한 인
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자신 또한 물속
에 잠겨 있음을 발견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별개의 것으로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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