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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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사실 자연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면, 삼
            라만상의 모든 사물들은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일지라도 그 나름
            의 존엄하고 경이로운 존재이다. 바로 이러한 생명존중 사상이 아름다운

            무늬 결을 이루고 있다.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모습은 바로 이 순

            간, 여기의, 이 우주의 현실모습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란 어디를 말하
            는가? 바로 그늘 밑을 말하는 것이고, 그곳은 곧 우주속의 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의 후미진 곳에 있는 아주 작은 사물이나 그

            사물의 미동까지도 포착해내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 시인의 눈에는

            나와 나비, 그리고 씬냉이꽃이 우주 속의 일원으로 평등하게 존재한다. 모
            든 존재의 동일성 즉, 씬냉이꽃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체득하고 있는
            이 시는 월하시의 압권이다. 나아가 월하의 작은 것을 통하여 큰 우주를

            발견하는 사유는 의상대사 「법성게」의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

            고, 낱낱의 티끌마다 우주가 다 들었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는
            화엄적 상상력과 맥을 같이한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연의 순수상태에 대하여 직관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을 통

            찰하려는 월하의 시세계는 간결하고 명징한 이미지를 갖는다. 인공이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성숙됨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그의 시각이다. 그
            의 이러한 시의식의 출발은 익지 않은 푸른 감을 매개물로 하여 현상적 움
            직임 속에서 사물의 본질을 관조하는 「청시靑柿」에서 잘 드러난다.




                유월의 꿈이 빛나는 작은 뜰을
                이제 미풍이 지나간 뒤
                감나무 가지가 흔들리우고

                살찐 암록색暗綠色 잎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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