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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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큰 눈’은 화자의 내면의식이 존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절대자 혹은
           부처님의 눈일 수 있고, 또한 자연의 질서를 읽어 낼 수 있는 깨달음의 눈
           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하찮은 샘물, 벌레 그리고 씬냉이꽃과 같은 자연물에서 우주의 숨

           결을 느끼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던 월하의 생태 상상력은 「씬냉이꽃」에서 더
           욱 깊어진다. 신록의 계절이라 모두들 산과 바다로 놀러간다고 야단들이지
           만, 시인은 홀로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에 피어 있는 조그만 씬냉이꽃을

           발견한다. 사실 씬냉이는 하찮은 식물로 꽃도 화려하지 않으며 관심 밖의

           존재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 조그만 씬냉이꽃에서 하나의 우주를 본다.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그늘 밑에 가려 외롭게 피어나 진한 향기를 내뿜고 나비를 불러들이는

           조그만 씬냉이꽃에서 감추어진 자연의 섭리를 포착하는 시인의 섬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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