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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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며 무한한 자연의 일부로 조화를 이루어
            질서 있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숲 속의 작은 샘물로 비
            유된 우주의 한 공간에 속에 있는 ‘나’가 자연과 하나라는 합일되는 모습

            이 형상화 되고 있다. 이와 같이 대상에 대한 분별을 초월한 지점에서 얻

            게 되는 월하의 화엄적 상상력은 다음의 시 「벌레」로 그대로 이어진다.


                고인 물 밑

                해금 속에 꼬물거리는 빨간

                실날같은 벌레를 들여다보며
                머리 위
                등 뒤의

                나를 바라보는 어떤 큰 눈을 생각하다가

                나는 그만
                그 실날같은 빨간 벌레가 되다.


              시적 화자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혼탁한 세

            상을 상징하는 해금 속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실날같은 벌레’를 보다가 자
            신이 ‘그 실날같은 빨간 벌레’가 된다. 사물로서 바라보았던 벌레는 시인의
            자아가 되는 벌레로 치환된 것이다. 극도의 자기 축소에 의한 크고 넓은

            세계로의 확장이라는 역설의 변증법을 드러내 보인다. 이것은 자아가 동일

            시를 통하여 자신 아닌 존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개체적 자아를 확장하
            여 큰 자아Self로 승화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로 상대적 분별을 넘어선
            선적 경지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직접적인 매개는 ‘나를

            바라보는 어떤 큰 눈’을 생각한 것이다. 화자 자신의 머리와 등 뒤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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