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20년 12월호 Vol.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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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곳에는
우주도 굴속처럼 좁고
나를 비우는 곳에는
한 컨 협실도 하늘처럼 넓다
나에의 집착을 여의는 곳에
그 말은 바르고
그 행은 자유롭고
그 마음은 무의의 열락에 잠긴다.
시인은 우주처럼 넓은 공간에서 ‘나’를 세우면 좁게 느껴지지만 좁은 공
간에서도 ‘나’를 비움으로써 하늘처럼 넓은 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다. 그러기 위해서는 번뇌나 망상 그리고 집착이라고 하는 현상에 얽매이
지 않는 인간의 참다운 마음이 바로 걸림이 없는 무위의 법열에 도달하는
방법임을 드러내 보인다. 다시 말해, ‘나’라고 하는 본질의 집착에서 벗어남
으로 인해 걸림이 없는 대자유의 정신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러한 시적 세계는 욕망과 집착에 매여 번다하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현대
인에게 내려놓기와 비움을 통한 ‘텅 빈 충만’의 치유의 장을 열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월하는 자연의 생명적 질서를 통하여 생명정신을 보았으며, 우주
속에서 자유롭게 소요하는 시 정신을 가지고 글쓰기를 했다할 수 있다. 물
론 여기에는 불교의 우주론과 연기론에 기반 한 선심의 시심화의 사유와
상상력이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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