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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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구성원의 합의로 이뤄진다. 유령에 대한 이 합의가 메모장으로 쓰기에
도 불편한 종이에 가치를 부여한다.
실체는 없지만 효능은 있다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극복하고 상호 신
뢰가 없는 사람과도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기 위해 화폐를 사용했을 것이
다. 원시적인 화폐로는 가축, 곡식, 조가비, 가죽, 옷감, 소금 등이 사용됐
다고 한다. 화폐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쉽게 부패하지 않고, 오랫동안 쌓아
둘 수 있으며, 다른 물품과 교환할 때 어렵지 않게 그 가치를 추정하고 비
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조가비가 예외다. 내륙 지방에서 희귀하
다는 점 외에는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교환가치 이외의 다른 효용성이 없는 조가비에 저절로 가치가 부여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 사이의 합의가 이뤄지거나 신뢰받는 중앙
집단의 강제력이 있는 보증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치가 보장되기만 하면,
조가비는 가축이나 곡식, 가죽, 옷감, 소금보다 화폐로 사용하기에 훨씬
더 편리하다.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쌓아두기 편리하고 옮기거나 교환하기
쉬울 뿐 아니라, 부패하지 않고 위조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내재적 가치의 사라짐 구성원 사이의 신뢰나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
면 화폐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최초의 화폐는 내재적 가치
를 지니는 것이어야 했다. 수메르인은 보리를 사용했다. 화폐라기보다는 곡
식이지만,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보리를 통해 평가하는 체제를 만들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금속을 화폐로 사용한 것은 4천 년 이전이라고 알려져 있
다. 수메르인은 처음에는 보리를 화폐로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은의 무게를 달
아 화폐로 사용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화폐의 유통은 주화를 사용하면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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