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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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7세기 후반에 리디아에서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화폐의 원조인 리디아 주화는 금과 은의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은의 무게를 달아 화폐로 쓰거나 금은 합금으로 주화를 만들거나 모두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가 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은이나 금은 왕관이나 조각

           상 등의 조형물을 만드는 것 외에는 실용적으로 거의 쓸데가 없다. 이 점에
           서 조가비보다 조금 나을 뿐, 청동이나 강철보다 훨씬 못하다. 내재적 가치가
           있는 보리에서 내재적 가치가 없는 금속으로 진화하면서 화폐는 발전했다.




           실체 없는 효능     이후 금본위제가 시행됐다. 화폐에 새겨진 액면 가치
           만큼의 금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1971년에 미국이 브레튼우즈 협
           정을 파기하면서, 금으로 바꿔주는 화폐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로써 현

           물을 교환해주는 화폐는 사라졌다. 보리에서 시작하여 금은 합금의 주화

           를 거쳐 금으로 교환할 수도 없는 것으로 변하면서, 화폐의 실체는 점점
           희미해졌고 내재적 가치는 꾸준히 하락하다가 사라졌다. 교환가치는 지금
           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실체가 없을지라도 화폐는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다. 인류 역사상 어떤 권력도 화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

           지 못했을 것이다. 실체도 없는 것이 엄청난 효능을 가진다. 그런데 실체가
           없이 효능을 발휘하는 건 화폐뿐이 아니다. 사실은 모든 게 다 그렇다. 내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그렇고, 내 앞에 나타나는 물건도 그렇고, 모든 생

           명도 다 그렇다. 실체가 있다는 게 착각이다. 왜 그런가? 살펴보자.



           물질 - 마술의 세계    블랙홀은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 중심부에도 존
           재한다. 지구가 블랙홀의 한 부분이 된다면 지구 전체는 반지름이 1cm도 안

           되는 공간으로 압축돼야 한다. 그래야 빛도 탈출할 수 없게 된다. 블랙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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