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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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 공존하였고 임제법통을 세워 불교의 혜명을 이어간 시기로 보았다.
당시 후루타니 기요시 같은 일본인 학자는 조선시대를 ‘한 편의 불교 쇠망
사’라고 단언하고 부정적 시각에서 폄하하려 했다. 그렇기에 조선시대를 재
조명하여 전통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 그의 노력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
다. 그는 1920년에 쓴 글에서 조선시대에 승려가 7천賤의 천민과 같았다고
한 다카하시 도오루 등의 주장에 대해 역사에 몰상식한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하였다. 그 근거로 조선후기의 법전 어디에도 승려를 천인으
로 규정한 내용이 없으며 학문과 계행이 부족하고 양식을 구걸하는 일부
승려들 때문에 수준 낮은 승려 이미지가 통용되었을 뿐임을 들었다.
20세기 이후 문헌 및 금석문 자료가 집성되고 근대학문의 방법론을 적
용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전체상이 그려지
게 되었다. 그 단초를 연 것이 바로 한국불교 연구의 초석을 놓은 이능화
의 『조선불교통사』였다. 이 책은 체계적 자료 조사와 수집이 시작된 지 얼
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자료를 모아서 수
록했다. 그렇기에 이후에 나온 많은 연구들은 이 책에 있는 자료들을 활용
하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능화는 한국불교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개관하고 여러 종파의 연원을
밝혔으며 무엇보다 주요 사건과 인물, 정책과 제도, 사찰과 서책 등을 망
라하여 후속 연구의 지침이 되었다. 그는 한학과 외국어에도 뛰어났고 불
교를 비롯한 종교와 민속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주저인 『조선
불교통사』는 유교와 함께 한국의 전통 사상과 종교를 대표하는 불교를 집
중적으로 조명하고 그 역사를 체계화시킨 기념비적 저작이다. 이처럼 근대
기 학술 영역에서 한국학의 기반을 닦고 불교를 주축으로 하는 전통을 학
술담론으로 승화시킨 그의 공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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