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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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런 이는 겉보기엔 평범하다. 때론 어린아이처럼 화를 내고 사소한
일에 기뻐하기도 한다. 허나 그 마음은 대해탈처에서 늘 안온하고 무심하
다. 그런 부사의대해탈경계不思議大解脫境界가 보임이다. 아직까지 무언가
남아 있어 닦고 배우고 익힌다면 그것은 견성도 아니고 무심도 아니며 보
임도 아니다. 또한 분주한 것을 싫어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
다면 그것 역시 바로 깨친 것이 아니다. 바로 깨친 사람은 조용한 곳에 있
어도 조용함을 모르고 분주한 곳에 있어도 분주함을 모른다. 조용함과 분
주함 둘 다 초탈한 사람이 바로 깨친 사람이다. 바로 깨쳐 무심을 보임하
는 이에게 어찌 조용함과 분주함만 없겠는가? 끝끝내 무심하여 부처를 찾
아도 부처를 찾아볼 수 없고 조사를 찾아도 조사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
니, 설사 성인이라고 칭송을 받더라도 기뻐함이 없고 험악한 지옥에 떨어
져 온갖 고초를 겪는다 하더라도 끝끝내 무심하여 싫어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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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무심을 철저히 증득하여 그 마음이 탕탕무애자재한蕩蕩無碍自在漢 이
라야 해탈도인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무심도인의 무애자재한 대적정 삼
매가 보임이요, 성태를 기르는 것임을 원오 스님께서 분명히 밝히셨다. 이
것이 바르게 견성한 사람, 즉 일체 번뇌망상이 다 제거되어 진여자성을 철
저히 증득한 사람의 생활이다. 흔히 망상 부리다가 투명하고 맑은 경계가
조금 나타나고 견해가 좀 밝아진 듯하면 견성으로 오해하고 착각한 이들이
많은데 그것은 견성이 아니다. 일체 망념이 다 끊어지고 망념이 끊어졌다
는 자취마저 없어진 경계, 푸른 하늘처럼 맑고 맑은 경계마저도 초탈한 대
무심지가 진정한 견성이고 구경각이다. 또 한 망상을 차근차근히 없애가는
과정을 보임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보임이란 망상이 다 제거된 무심
속에서 자유자재한 생활을 영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어느 부처님 어느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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