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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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닦고 증득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남악 스님이 말씀하신 ‘닦음’엔 ‘불
오염不汚染’ 즉 ‘더럽혀지지 않는’이란 조건이 붙어있다. 일체의 번뇌망상을
완전히 끊어 10지·등각을 넘어서야 불오염이지 10지·등각까지는 불오염이
안 된다. 그러니 더럽혀지지 않는 닦음과 깨달음이란 10지·등각을 완전히
초월한 원증圓證 원수圓修의 행으로 사실 ‘수修’니 ‘증證’이니 하는 말이 붙
을 수 없는 것이다. 말을 하자니 그렇게 표현한 것뿐이다. 특별히 더 배우
고 갈고 닦는 행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깨달음 후의 수행이란 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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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후의 일상생활로서 겨울이면 핫옷 을 입고 여름이면 삼베옷을 입으며
배고프면 밥을 먹고 때맞춰 예불을 드리는 것이다. 일상사 그대로가 무량
불사無量佛事이다. 심지어 교학에서도 제8 부동지를 체득하면 거친 망상들
이 끊어져 더 이상 애쓸 것이 없는 무공용위無功用位에 들어간다 하였다.
하물며 선종의 견성은 10지·등각마저 넘어선 것인데 어찌 애써 배우고 닦
음이 있겠는가? 선종에서는 8지 보살의 경계도 자성을 바로 깨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언구를 의심하지 않음이 큰 병이다.” 하고는 몽둥이
를 들고 “바로 대답하라.”고 다그치곤 했던 것이다. 이것 또한 선가와 교가
의 차이점이라 하겠다.
교가에서는 “제8지 이상이면 무공용이므로 더 이상 애쓸 것 없이 자유
자재로 생활하는 가운데 저절로 성불의 길로 나아간다.”고 하였지만 선문
에서는 “아직 길 위에 있다.”며 부정하였다. 왜냐하면 교가의 방법대로라면
성불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종에서
는 단박에 원만한 불과를 성취케 하기 위해 무공용지에 들었더라도 다시
화두를 주어 대답을 다그치고 용맹정진을 시키는 것이다. 8지뿐 아니라 설
령 10지·등각이라 해도 선가에서 볼 때는 올바른 견성이 아닌 것이다. 그
래서 “10지·등각이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리듯 설법하지만 성품을 봄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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