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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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아니다.”고 한다. 이는 원오 스님도 말씀하시고 여러 곳에서 이미
           지적된 바이며 나 또한 늘 하는 얘기이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
           가 끊김”은 곧 무심경계로 참으로 감로수와 같은 것이기는 하나 종문에서는

           그것을 구경각·견성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 무심경계에서 다시 한 번 “크게

           벗어나야 한다.”, “크게 눈을 떠야 한다.”, “크게 살아나야 한다.”고 말하고,
           그래야 돈오이며 견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규봉이 말한 돈오와 종문에
           서 말하는 돈오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종문에서 보면 규봉의 돈오는 ‘참다운 돈오’, ‘참다운 견성’이라 할 수 없

           다. “무심을 도라 하지 말라. 무심이라도 한 겹의 큰 관문이 남아 있느니
           라.”고 하신 옛 말씀처럼 무심처에서 다시 크게 한 번 깨쳐야 그것이 진정
           한 무심이고 참다운 깨달음이며 진실한 견성이라는 것이 종문의 입장이

           다. 이처럼 깨달음에 대한 견해가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선문의 정통적인

           견해에 따른 오후보임과 규봉이 말한 오후보임도 하늘과 땅처럼 차원이
           다른 것이다.
             앞의 내용들을 총괄해 다시 정리해 보자. 영명연수 선사가 지은 『종경

           록』은 용수 보살 이후 최대의 저술 선종의 만리장성으로 일컬어지는 대역

           작이다. 그 첫머리 「표종장」에서 종문의 표준을 정하길, 견성하면 당하에
           무심하여 10지·등각도 초월하므로 약과 병이 다 필요 없어진다고 했다. 그
           럼 환자는 누구인가? 번뇌망상의 경중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저 아래 지

           옥 중생부터 위로 10지·등각보살까지도 모두 환자이다.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 10지·등각도 미세망상이 남아 있으므로 아직 환자이다. 병이 완전
           히 나아 더 이상 약이 필요 없는 것이 견성이라 했으니, 견성이란 10지·등
           각을 초월한 것임이 분명하다. 견성하면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염불이니 화

           두니 하는 일체방편이 필요 없다. 그러니 참으로 할 일 없어 크게 편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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