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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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근대 불교잡지는 종교 잡지이자 시사
잡지, 문화 잡지이며 여기에 학술성까지 포괄하는 종합교양지의 성격이 강
하다. 발행된 순서에 따라 개별 잡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다양한 문화적 성격을 일부나마 풀어내고자 한다.
발행 기관과 발행인 『조선불교월보』(사진 1)는 1912년 2월에 창간되어 1913
년 8월, 19호로 종간되었다. 발행 기관은 조선불교월보사朝鮮佛敎月報社인
데, 4호까지는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의 기관지로, 5호부터는 ‘조선선교양종
각본사 주지 회의원朝鮮禪敎兩宗各本寺住持會議院’의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은 권상로(權相老, 1879-1965)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잡지의
마지막 장에 있는 ‘판권장’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르다. 그
는 1912년(34세) 1월 조선불교월보사 사장으로 취임하여 잡지 발간을 주도했
지만, 그해 9월에 사임하고 낙향하여 김용사 경흥학교 교수, 김용사 감무직
을 수행하였다.(1912.9-1916.7) 잡지의 판권란에는 19호까지 권상로가 발행인
으로 소개되어 있으나, 실제로 그는 각황사에 있던 조선불교월보사에 상주
하지 않았으며, 8호(1912. 9)부터 실제적인 편집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
인된다. 8호부터 그 역할을 대신한 이는 백양사·구암사 출신의 박한영, 선
암사 출신의 최동식이다. 박한영이 본격적으로 『월보』에 투고를 시작한 시
기와 권상로가 서울을 떠난 시기는 1912년 9월 경으로 정확히 일치한다.
이 시기 불교계의 가장 큰 이슈는 원종종무원의 대표 이회광이 조선 불
교를 일본 조동종에 귀속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였다. 이에 대해 비판적이
던 박한영, 진진응, 김종래, 한용운 등은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임제종지에
서 찾는 임제종을 설립하여 이에 맞섰다. 양자의 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의 압력으로 조정국면을 맞이한다. 1912년 7월에는 원종(이회광)과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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