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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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카하시 같은 노련한 일본인 학자들이 수
           십 년 동안 식민통치의 정당성, 조선인과 조선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 그
           리고 이러한 사고思考와 분석에 젖어들게 만드는 학문적 방법과 틀로 조선인

           들을 교육시켰다. 다카하시 같은 학자에게서 배운 조선인들이 해방 이후에

                                  도 수십 년간 황국신민과 식민사관적 사고방식
                                  으로 학문적 활동 등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
                                                                  16)
                                  에 지금도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

                                  이다.



                                  [2] “(사찰령이) 사찰재산의 변동, 매각을 일
                                  제日帝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게 하였는

                                  바, 이는 한편으로는 사찰재산 보호를 가

                                  져왔다. 이로써 사찰령 시행 이전 지방의
                                  토호 및 개신교에서 자행한 사찰재산 침범
                                  에 대한 저지의 역할을 하였다.”
            사진  9.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쓴 조선시대 불교통사』, 민속원,    [3] “사찰령 등장 이전 불교운영의 혼란,
            2020.
                                  사찰재산 침탈 등 불교계 자체 내의 여러
                모순이 많았지만, 사찰령 체제에 의해 그런 문제가 제거되었던
                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 비록 자생성, 논리성이 미약하고, 일

                제정책이 관철되었지만 그러한 흐름이 근대 이전의 불교와는 다

                른 생존과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인정한 측면이 있었음을 부
                인하지 못한다.”




           16) 자세한 내용은 ‘정종헌 지음, 『제국대학의 조센징』, 서울: 휴머니스트, 2019’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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