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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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령’에 대한 이러한 분석과 평가는 조선총독부가 시정 25주년(1935)
을 맞아 펴낸 『시정 25년사·데라우치 총독시대』에 담긴 기술記述과 거의 일
치한다.
[4] “1911년(메이지 44) 6월 제정·실시된 ‘사찰령’
과 ‘사찰령 시행규칙’은 실로 조선불교를 빈사
상태에서 소생시켰다. 그 요지를 개괄하면 …
나아가 총독은 병합 당시의 유고諭告에서 신
교信敎의 자유와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등을
불문하고 모두 평등하게 이를 취급할 뜻을 선언
했기 때문에, 이 사찰령은 곧 구체적으로 재래
불교의 존립과 보호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오랫동안 매우 쇠퇴했던 사찰도 새로 주지
를 두고 사법寺法을 정해, 재산 보유의 방법이
확립되어 면목을 크게 일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수백 년간 억압받아 온 승려는 처음으로 일시동 사진 10. 조남호 옮김, 『조선의 유학』,
소나무, 1999.
인의 은정恩政을 입고 기뻐하였으며, 굴욕의 처
지를 벗어나 다른 종교인들과 균등하게 포교의
임무를 맡아 점점 자신의 직책을 자각하게 되었다.”
17)
도둑이 힘을 앞세워 “들어오지 말라!”는 어떤 집에 침입해 그 집의 물건
을 마음대로 만지고는 “은정을 베풀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
17) 박찬승 등 역주,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상)-시정 25년사❶』, 서울: 민속원, 2018, pp.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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