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9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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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맹諸宗同德會盟을 개최
             했다. 4년간에 걸쳐 국
             가권력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왕법불법불리지

             론王法佛法不離之論’을 필
             두로 8가지의 의제를 제
             시했다. 그 가운데는 고
                                     사진 1. 다카쿠스 준지로. 무사시노대학 제공.
             답적인  불교를  철폐하

             고, 학교를 세우거나 인재를 양성하자는 발전안도 당연히 들어 있었다.
               이를 위한 하나의 돌파구는 인재의 해외 유학이었다. 탈아입구脫亞入
             歐의 사회풍조를 따라 서양을 배우기 위한 열풍이 불기도 했다. 세력이 가

             장 큰 정토진종은 1872년에 구미의 종교시찰을 위해 승려들을 파견하였

             다. 이어 1876년에는 본격적으로 유학생을 파견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서구국가였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중심을 한 불교학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일본 또한 19세기 후반

             에는 인도, 스리랑카 등 현지에도 건너갔다. 서양은 이미 동양학에 대한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막스 뮐러, 실벵 레비, 올덴 버그, 도이센 등
             은 일본인들에 큰 영향을 준 서양학자들이다.

               최초의 유학생은 동본원사의 난조 분유南條文雄와 카사하라 켄주笠原研
             壽다. 난조는 영국에서 영어를 배운 후, 뮐러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그와

             함께 영역과 해설을 가한 『대명삼장성교목록大明三藏聖敎目錄』 등 다수의 범
             문 경전들을 간행했다. 귀국 후에는 동경제국대학 문학부의 강사가 되어
             범어를 가르쳤다. 그는 일본 최초의 문학박사가 되었다. 그의 뒤를 다카쿠

             스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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