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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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 전통을 비판하고 과거의 구습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종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격변
             하는 세계정세에서 불교계는 지금까지의 폐쇄성을 각성하고 투철한 시대인

             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한국불교가 장차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진단이었다. 그가 제시한 처방은
             불교의 평등주의와 보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대 인도의 엄
             격한 계급주의 사회에서 평등주의를 제창한 석가는 세계 제일의 대혁명가

             이며, 불교의 불이不二와 원융이야말로 지극한 평등이고 궁극적 혁명이라

             는 것이 그의 논거였다. 다시 말해 자력과 타력을 겸행하고 종교와 윤리를
             겸비한 평등하고 보편적인 종교가 바로 불교임을 자부하고 강조한 것이다.
               권상로의 이러한 호교적 인식은 뒤에 호국불교의 선양으로 이어졌다. 『임

             전의 조선불교』(1943)에서 그는 계율의 조문에 어긋나도 목적과 동기가 올바

             르고 청정하면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아무리 힘써서 불살생 등을 행해도 목
             적과 동기가 옳지 않고 깨끗하지 않으면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국방이야말로 계율을 수호하는 것이고 전쟁의 승리

             가 바로 성불이라고까지 하였다. 또 세속오계나 임진왜란 승군과 같은 호

             국의 사례를 들어서 계율의 현실적 적용을 명분으로 불교도의 전쟁 참여
             를 합리화했다. 비록 일제강점기의 전시체제였다고 해도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의 국체 수호를 위해 계율을 그릇되게 이해하고 그것을 선전한

             것은 분명 잘못이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와 함께 그가 중시한 태

             고법통과 1920년대 이후 주창한 조계종명, 도의종조론道義宗祖論 등이 불
             교계에 영향을 미쳐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헌에 명시된 종조 도의, 중
             천조 보조 지눌, 중흥조 태고 보우의 조합이 완성되는 데 그가 기여한 사

             실도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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