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21년 2월호 Vol.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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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일러주셨다. 대혜가 스스로 생각하길 “만일 원
          오 스님이 나를 인정한다면 그 또한 내 병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릇된 선지
          식이니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다시는 선을 닦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허나 원오를 만난 대혜는 인정을 받기는커녕 절벽에 부딪친 듯 도저히

          접근할 방법이 없고 무쇠소 위에 앉은 모기처럼 주둥이를 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원오 스님을 실험하고 무게를 달아보려던 마음을 접고 마음속 깊
          은 곳의 속내를 드러내 오매에 일여하지 못한 자신의 병통을 원오 스님께

          여쭌 것이다. 허나 원오 스님은 손을 내저으며 언하言下에 부정하고 다시는

          입도 떼지 못하게 막으셨다. 그리곤 망상을 곧장 쉬라고만 일러주셨다.
           그러나 대혜는 그 말씀도 바로 믿질 못했다. 도리어 “부처님과 조사들께
          서 오매에 일여해야 올바른 깨달음이라 했는데 만일 그 오매일여가 사실이

          라면 나를 고쳐야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부처님 말씀이 잘못된 것이다.”

          라고 의심하였다. 이처럼 오매일여를 믿지 않고 들뜬 견해를 놓지 못하는
          것은 대혜 스님만의 병통이 아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참선을 하다가 이런
          병을 얻은 이들이 수두룩하게 많다. 공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큰소리치

          는 사람이 있어 만나보면 그저 망상에 휩싸인 사람들일뿐이다.

           그래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 그만 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고 일러주
          면 ‘네가 뭘 아느냐’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덤벼든다. 하는 수 없이 오매寤寐에
          일여一如하지 못하면 그것은 깨달음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병이 생긴 것이

          라고 차근차근 일러주지만 대개 한 번 부린 오기를 도무지 거두려 들지 않

          는다. 이렇게 말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공부를 해보니 일여한 경계를 차츰
          차츰 맛보게 되는데 오매일여는 도저히 되질 않습니다. 그거 혹시 스님만의
          주장은 아닙니까?” 아니다. 아무리 철저하게 깨치고 지견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오매일여가 되지 않으면 망상이란 것은 고불고조께서 말씀하신 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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