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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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묵적과 다화를 걸었다. 손님의 출입문인 니지리구치는 고개를 숙여야
만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낮았다. 다실 내부는 밝은 빛을 들이지 않는다. 그
저 한지 창문을 걸러 들어오는 부드럽고 고요하며 어스푸레한 음영만이 있
을 뿐이다. 마치 명상하는 공간과 같은 분위기에서 주객은 오롯이 지금 여
기 있는 그대로 다회에 임한다. 따라서 차를 내는 다도구는 눈으로 감상을
하기 위한 화려한 명물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대암 다실에는 두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하나는 대암
이 히데요시의 요청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히데요시가 사용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또 대암의 특징인 흙벽과 창문, 니지리구
치는 습기가 많은 여름 중심의 일본 전통적 목조건축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현재까지는 조선의 민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기일회一期一会
리큐는 다회에 임할 때 다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으로서 일기
일회를 강조하였다.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만남의 뜻으로 나의 이 순
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므로 지금 여기에 오롯이 집중하라는 것이다.
특히 초심자는 이를 마음에 새길 것을 가르쳤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스
님께서 『일기일회』라는 책을 남기셨는데, 각자覚者의 가르침은 공통하는 것
같다.
초심자가 일기일회의 다회에 집중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르침
이 있었다. 시비와 논쟁의 소지가 있는 화제를 금기시했다. 금전문제, 정치
문제, 종교문제, 남녀문제, 가정사문제, 전쟁문제 등이다. 이뿐 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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