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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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화엄사상을 체계화하고 주도해간 사람은 의상 대사이다. 진골출신으로
             황복사皇福寺에 출가한 의상이 당나라로 간 때는 원광 법사가 귀국한 다음
             해인 태종무열왕 8년 661년이다. 670년 귀국한 후 양양 낙산洛山에서 관음

             보살을 친견하고 황복사에서 화엄학을 강론하다가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통일을 완수하는 676년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사상을 본격
             적으로 펼쳐나갔다. 그는 화엄학을 공부한 후 지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

             乘法界圖’를 요체로 화엄사상을 정립하고 아미타불을 받드는 미타신앙彌陀
             信仰을 교단의 중심신앙으로 삼았다. 낙산사 창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관음신앙觀音信仰을 구도 신앙으로 승화시키고 미타신앙을 현실에 사는 모
             든 인간이 받아들이기 쉬운 현실 신앙으로 정립하였다. 그는 저술보다는
             백성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사회가 화합하여 하나 되는 것을 추구하였

             기에 발원문이나 게송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화엄사상을 설파하여 나갔

             다. 물론 그 중심에는 일승법계도가 있고,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
             든 모르든 법성게를  암송하고 소리 내어 부르기도 했다. 이는 화엄사상의
             정수로서 『화엄경』의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을 핵심으로 하나와 전체의 연관

             성을 밝히고, 모든 법은 자성自性이 없고 단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관계

             속에 있다는 연기론을 제시한 것이다.
               7언으로 된 법성계를 열심히 암송하고 터득하여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
             면 죽어서도 아미타불이 사는 서쪽나라 깨끗한 불국토佛國土, 즉 극락정

             토極樂淨土에 다시 태어나 왕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극락정토는 딴 곳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라인들이 미타신앙을 간절히 믿고 따르면 바로 아
             미타불로 성불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통일된 신라의 국토가 바로 극락
             정토가 된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신라의 미타신앙은 이렇게 전

             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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