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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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구절은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의 원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이른바 ‘심성본정心性本淨 객진번뇌客塵煩惱’라는 경전
             적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내용이 한역 아함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심성본정설은 테라와다(Theravāda, 上座部)와 마하상기

             까(Mahāsaṃghika,  大衆部)에서  주장했던  사상이다.  사르와스띠와다
             (Sarvāstivāda, 說一切有部)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는 반대로 ‘심성본부정
             설心性本不淨說’을 주장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이 사상을 적극 수용하

             고 확대 해석하여 불성佛性·여래장如來藏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위에서 인용한 빨리어 빠밧사라pabhassara는 ‘빛나는, 매우 밝고 깨끗한,
             청정한’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마음은 빛난다’ 혹은 ‘이 마음은 청정하다’

             로 번역한다. 주석서에서는 이 마음을 ‘바왕가의 마음(bhavaṅga-citta, 有分
             心)’이라고 해석한다. 즉 마음에는 색깔이 없고, 색깔이 없기 때문에 깨끗하

             여 빛난다는 것이다. 상좌부에서는 이것을 약간 변형시킨 ‘바왕가-윈냐냐
             (bhavaṅga-viññāṇa)’, 즉 유분식有分識을 윤회의 주체로 보았다. 이러한 상좌
             부의 해석은 붓다의 무아설에 위배된다. 그래서 후대 논사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빨리어 ‘아간뚜까āgantuka’는 ‘다가오는’이라는 뜻이다. 대림 스님은 ‘객으
             로 온 것들’이라고 번역했다. 주석서에서는 ‘아간뚜까’를 잠재의식[유분식]과 함
             께 생기지 않고 나중에 빠른 포착의 순간에 생긴 것들이라고 해석한다. 즉

             본래의 마음은 청정한데, 나중에 생긴 번뇌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뜻이다. 또

             빨리어 ‘우빡낄레사upakkilesa’는 수번뇌隨煩惱로 번역되는데, 탐욕·성냄·어
             리석음 등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라는 뜻이다.
               주석서에서는 심성본정과 객진번뇌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 혹은 스승과 제

             자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른바 행실이 올바른 부모나 스승이 행실이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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