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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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구절이 ‘심성본정설’의 원형이라는 사실에 대해
             서는 간과하고 있다.
               한편 부파불교 시대의 논사들은 심성이 본래 청정한가에 대해 치열한 논

             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하면 대중부에서는

             “심성心性은 본래 청정한데 객진客塵의 수번뇌隨煩惱에 섞여 물들게 되어 부
             정不淨하게 된다고 설한다(T 49, p.15c).” 이것은 중생들의 심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지만, 객진의 수번뇌에 섞여 물들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앙굿따라

             니까야』(AN1:5:1)의 내용과 일치한다.

               『성실론成實論』에 “따라서 심성은 본래 청정하지 않고 객진번뇌 때문에 깨끗
             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부처는 중생을 위해 이른바 마음은 항상 존재한다
             고 말한다. 그래서 객진번뇌에 물들면 그 마음은 깨끗하지 않다고 설한다. 또

             한 부처는 나태한 중생들을 위함이다. 만약 마음이 본래 청정하지 않다고 들

             으면, 다시 심성을 개조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며, 따라서 깨끗한 마음을 일
             으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심성은 본래 청정하다고 설한다(T 32, p.258c).”고 나
             온다. 이와 같이 『성실론』에서는 마음이 본래 청정하지 않다고 하면 깨끗한 마

             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심성본정설을 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섭대승론攝大乘論』 권상卷上에 “어찌하여 더러움에 물든 마음이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는가? 만약 이 마음이 없다면 독행무명獨行無明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오식五識과 더불어 비슷한 이 법法은 당연히 없다. 왜냐하면 이 오식은

             공통적으로 일시에 스스로의 의지가 있으니, 안眼 등은 안근眼根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의명意名은 당연히 의義가 없어야 한다(T 31, p.114a)”고 설해
             져 있다. 이것은 본래 청정한 마음이 없다면 더러움에 물든 마음[有染汚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섭대승론』에서도 심성

             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 대승불교의 경전과 논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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