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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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나이에 든 사람이라면 ‘아 어쩌면 내 마음과 이리도 같을까’ 하게 된
다. 이문열(李文烈, 1948- ) 선생이 소설 「시인」에서도 그려본 주인공이지만,
이 시 역시 절창絶唱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긴 시간 같지만,
생사가 찰나刹那이고 풍진 세상에 허덕거려봤자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내
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아서라, 허망하게 몸 굴리지 말고 내가 누구인지라
도 알고 가라는 것이 붓다의 메시지이다. 그것이 참 안 된다. 대부분의 사
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죽으리라.
그간 여러 번 오기도 했지만, 이번에도 또 안양루 처마 밑에서 텅 빈 마
음으로 강산을 바라본다. 강산은 유구悠久한데 사람만 분주히 오고 갈 뿐
이다. “의첨산색연운취倚簷山色連雲翠, 출함화지대로향出檻花枝帶露香” 처마
에 기댄 산은 구름에 연이어 푸르고, 난간을 벗어난 꽃가지는 이슬과 향기
를 머금고 있구나! 시공간을 벗어던진 매월당 설잠 화상이 법성게 주해에
서 읊은 착어着語다. 경탄할 뿐이다(사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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