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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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강학과 강경, 사기 등 주석서의 성행, 염불정토 신앙 등을 대상으로 하
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사사관리서 설립, 원종과 임제종의 창설과 식민
지 사찰령 체제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는 『이조불교』를 쓴 다카하시 도
루의 조선불교 쇠퇴론과 부정론을 의식해서인지 조선시대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했다. 즉 임제태고법통을 기준으로 한 전법의 면면한
계승과 강학의 성행, 불서의 대량 간행 등에 주목하여 조선후기 불교의 다
양한 양상을 그려내는데 『조선불교사고』의 많은 분량을 할애하였다.
그런 그였기에 조선시대 불교에 대해 그 전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주장
을 펼쳤다. 먼저 조선은 배불의 시대이지만 태종이나 연산군 같은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태조와 세조는 말할 것도 없고 대개의 국왕들은 오히려
숭불 행위를 용인하고 친불교적 정서를 가졌다고 평가하였다. 다음으로 태
고법통은 여말선초의 실제 역사상과는 무관하게 후대에 정합적으로 만들
어진 것이며, 보우를 비롯해 고려 말의 선승들은 조계종에 속했고 조선 후
기에 임제법통이 표방되면서 임제종 법맥으로 연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 제도적으로 교단 규정이 있었던 고려시대에는 소속 종파의 수계사를 정
식 스승으로 삼았지만 종파가 없어진 조선 중기 이후는 오직 전법사의 법
맥을 계승하였다고 보았다.
포광 김영수의 학문적 업적은 무엇보다 한국불교의 교단사 체계를 세운
선구자라는 점에 있다. 그가 제기한 학설은 통설이 되어 지금까지도 학계
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고려시대를 오교구산五敎九山에서 오교양종五
敎兩宗으로의 변화로 설명하고 조선전기는 선교양종禪敎兩宗 체제로 정의하
였다. 이는 교종과 선종을 포괄한 불교 교단 전체의 공식 명칭이 시기별로
어떻게 바뀌며 전개해 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영수는 중앙불전에서 불교
사를 가르치던 1930년대 후반에 「조선불교의 종명과 전등 및 종지에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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