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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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간행되고, 불교학자 야마모토 노부유키(『‘정
신주의’는 누구의 사상인가』), 곤도 슌타로(『천황제
국가와 ‘정신주의’』), 후지타 마사카츠(『기요자와 만
시가 걸은 길』) 등에 의해 그의 사상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철학자 이마무라 히토
시(『기요자와 만시의 사상』, 『기요자와 만시와 철학』)
에 의해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기요자와의 철
학성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 사진 1. 기요자와 만시, 기요자와 만
시 기념관 제공.
상성이 현대인들에게 조응하는 것일까.
기요자와의 사상은 『종교철학 해골』을 통해 근대적 종교학을 개척하고
자 했던 시기와 『정신계』에 정신주의를 제창하여 절대무한의 세계를 수립
한 시기다. 전자는 『타력문철학 해골』과 『연기존재론』으로 전개되는데 서
양의 철학적 존재론과 불교적 존재론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기본적인
언어 구조는 유한과 무한의 대립과 융합에 기초하고 있다. 철학은 무한을
탐구하는 것이고, 종교는 무한에 대한 신념이다. 따라서 철학이 그 작업을
완료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종교의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기요자와는
이처럼 『종교철학 해골』의 대전제를 의식과 신체를 총동원하여 증명하고
자 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는 구조적인 타율과 복종을 강요했다. 기계적인 문
명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민중들은 심리적인 탈출구를 찾고 있었지만 미
망에 불과했다. 기요자와는 다시 종교에 길을 물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길
과는 다른, 서구문명에 대응 가능한, 그러면서도 이성과 철학을 이이제
이以夷制夷의 방식으로 구사하면서 숨통을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묻
는다. 종교란 무엇인가. 그때까지의 정의를 나열했지만, 그는 거기에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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