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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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오교양종에 대하여」 등의 논문을 잡지에 발표하
였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불교사고』에서도 오교양종
등의 교단 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그는 오교가 교종에 속하는 열반, 계율, 법성, 법상,
원융이며, 조선 초 실록 기사에 등장하는 시흥종, 남
산종, 중도종, 자은종, 화엄종이 이에 각각 해당한다
고 보았다. 구산은 잘 알려진 대로 나말여초에 형성된
선종의 대표 산문으로서, 도의의 가지산문, 홍척의 실
상산문, 혜철의 동리산문, 현욱의 봉림산문, 도윤의 사진 2. 『조선불교사고』,
민속원 영인본, 2002.
사자산문, 무염의 성주산문, 범일의 사굴산문, 도헌의
희양산문, 이엄의 수미산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양종은 구산선문을 계승
한 조계종과 의천이 세운 천태종을 통칭하는 용어로 보았는데, 고려에서
는 조계종, 천태종이 모두 선종에 포함되었다. 또 천태종 개창 전에는 교
종에 상대되는 선종의 의미로 선적종이 쓰이기도 했다. 한편 국가의 제도
적 승정체제가 폐지되고 공식 종파가 존재하지 않던 조선 후기에는 태고
보우가 중국에서 전해온 임제법통이 표방되며,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 밑
의 여러 문파로 그 법맥이 이어지게 되었다. 김영수는 이 계보가 오늘날까
지 연결되는 조선불교의 종통 법맥을 이루었음을 강조하였다.
김영수의 오교양종설에 대해 최소한 신라시대에는 종파로서 오교가 있
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또 오교는 다섯 종파가 아닌 교종을 통칭하는 용어
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양종이 조계종과 천태종의 선종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였다. 그럼에도 선종이 통일신라 하대에 들어
온 이후 고려 초에 구산선문이 성립되었고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까지 교
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오교양종이라는 명칭이 사료에 빈번히 등장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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