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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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하였다.
구양경무는 반야지와 불성론을 본심 하나에 귀결하였다. 본심에서 그
인식의 장애를 제거하고 미혹함을 깨달음으로 바꾸는 것이 ‘지혜’, 즉 보리
이고, 번뇌의 장애를 없애고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바꾸는 것이 ‘고요함’,
즉 열반이라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은 인간과 성인을 구분짓는 관건은 오
직 ‘본심’에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본심은 고요함인데, 이를 유학
에서는 항상 ‘인仁’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불교도 적극적으로 세
상에 나아가야 한다는 입세 정신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물론 근대적 특
성과 연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유학을 불교의 한 부분
으로 포함시켰던 것이다.
『대승기신론』 논쟁
유식학이 당시 모든 지식인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서양 문화에 대한 대
응방식 때문이었다. 유식학은 교리가 논리적, 합리적이어서 서양 관념론
철학을 대치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서양 제국주의에 내몰려서 반식민지 내지는 식민지로
몰락할 위험에 처해 있던 중국이 칸트나 헤겔 못지않은 관념론 철학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은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기적같은 일이었다. 전통불교와 달
리 유식학에서는 불교를 서양철학과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논리 체계에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전해오지 않던 유식학 문헌들이 일본을 통해 전해지고,
그 문헌들이 금릉각경처를 통해 철저히 고증되고 교감된 상태로 간행되었
다는 사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지나내학원에서 강의 연구를 하는 등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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