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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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열반에 든 뒤나 살아있을 때 성스러운 여러 제자들이 ‘훌륭한
지혜[妙願智]’로 순서에 따라 가르침들을 편찬하고 별도로 분류했다. 그래
서 붓다 열반 후 가다연니자(Kātyāyanīputra, 대략 BCE 150–BCE 50) 존자가
훌륭한 지혜로 순서에 따라 가르침을 편집해 『발지론』을
지었다.”는 구절처럼 논장의 형성은 부파의 분화分化와
깊은 관련이 있다. 부파분열의 시작과 전개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인도불교사에서 대략 BCE 300년
경 부파분열이 현저해지며 CE 50년경부터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BCE 300부터 CE 50
2)
까지를 - 물론 이후에도 부파는 존재했지만 영향력은
약화됐다 - ‘부파불교가 주류인 시대’로 보아도 큰 무리
는 없을 것이다. 이 시기에 논서도 발달됐다. 아비달마 사진 1. 『과학의 불교』,
서울: 모과나무, 2017.
논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아비달마 논서의 편찬자들은 붓다가 직접 아비달마를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인용문 [4])
은 물론 『아바달마구사론』 권제1 첫머리에도 비슷한 내
용이 있다.
[5] “존재[法]를 분석하고 살피는 것보다 번뇌들을 더
잘 소멸시킬 다른 뛰어난 방법은 없다. 세간이 변천하고
사진 2. 『지구인들을
중생들이 삶과 죽음이라는 괴로움의 큰 바다에서 윤회 위한 진리 탐구』,
서울: Denstory, 2016.
하는 것은 번뇌들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을 분석할 수
2)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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