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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슷한 스타일이다. 간단명료해 이해하기 쉽고 우파제사 보다는 체계화 된
형태다. 그러나 ‘아비달마 방식’이 발달되며 마달리가의 중요성은 서서히 줄
어든다.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라는 말이 처음부터 ‘논서의 대명사’라
3)
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아비달마’는 본래 ‘경과 율을 찬탄하는 것’
을 뜻했다. 붓다의 모든 말씀은 요의了義라는 대중부의 주장과 달리 설일
체유부는 붓다의 말씀 가운데는 요의도 있고 불요의도 있다고 보았다. ‘요의
경’은 매우 귀중한 것으로 찬탄할 가치가 있다. 이런 경전을 ‘아비달마’라
불러 ‘찬탄’했다. 『마하승기율』 권제14·권제39에 보이는 “구부의 경을 아비
달마라 부른다[九部修多羅, 是名阿毗曇(T22, 340c)].”; “아비달마는 구부의 경전
이다[阿毗曇者, 九部修多羅(T22, 536b)].”는 구절들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상좌
부 계통의 부파는 존귀하고 찬탄할만한 구경究竟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아비달마’라 불렀다. 나아가 구경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 말하는 ‘아비달
마’ 자체가 바로 무루의 지혜다. 그래서 ‘아비달마’는 ‘무루의 지혜[無漏慧]’
를 뜻하는 말로 의미가 승화된다. 『대비바사론』(권제1)이 “아비달마의 뛰어
난 본성은 오직 무루 지혜의 근본[然阿毘達磨勝義自性, 唯無漏慧根(T27,3b)]”이
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루의 지혜는 깨달음 자체, 즉 ‘현증現證’
이다. 아비달마가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그런데 무루의 지혜 자체인 아비달마는 ‘유루의 지혜[有漏慧]가 의지하는
그릇[資具]’이기도 하다. 유루의 지혜를 가진 출가자들이 ‘아비달마’에 의지
해 공부하고 수행하면 무루의 지혜, 즉 깨침을 증득할 수 있다. 어떻게 ‘아
3) 아비달마를 설명한 부분은 ‘印順著, 『說一切有部爲主的論書與論師之硏究』, 臺北: 正聞出版社, 1968,
pp.33-40.’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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