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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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대승이 주류로 떠오른 뒤엔 공문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곤륵문은
             아비달마문이 성행하기 이전 단계에 어느 정도 성행했던 방식이었다. ‘아비
             달마문’의 해석방식이 실재론적인 ‘유有’로 달렸다면, 공문은 주로 ‘공空’으

             로 나아갔고, 곤륵문은 유有와 무無의 두 극단으로 향했다고 평가된다.                       6)

               아비달마 논사들은 왜 정교하고 장대한 체계를 구축했을까? 5위75법으
             로 일체 존재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소멸을 설명하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붓다의 가르침은 세 가지 대전제가 있다. 첫째,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신비성을 배제하고 현상과 현실을 법칙성에 따라

             설명한다; 셋째, 번뇌를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해 해탈을 얻는다. 즉 세계
             를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해 자력으로 해탈하는 것이 붓다 교설의 핵심이
             다. 대승불교가 흥기한 뒤 세 가지 원칙은 조금씩 변하지만 적어도 부파불

             교 주류 시기까지는 변함없는 전제였다.

               이런 원칙을 견지하며 해탈을 증득하려면 먼저 자기를 둘러싼 존재의 현
             상과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외적인 물리적 현상은 인식기
             관을 통해 마음[心]과 마음부수[心所]로 연결된다. 물리적 현상, 인식기관,

             마음은 ‘연결된 하나’이며, 셋이 일체화된 세계가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는

             것이 아비달마 논사들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5위75법, 98
             번뇌설[견소단見所斷의 번뇌(88)와 수소단修所斷의 번뇌(10)] 등 정연하고 조직적인
             체계를 구축했다. 붓다의 말씀에 입각해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노력

             으로 번뇌를 제거해 ‘영원한 자유[解脫]’를 성취하자는 아비달마 논사들의

             ‘간절함’이 정교하고 장대한 체계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승원에 안주하는 출가자들만의 해탈을 위해서가 아니고 ‘아비달마 체계’를




             6) 呂澂著, 『印度佛學源流略講』, 上海: 上海人民出版社, 2005,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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