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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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품은 이롭지 못한 상황, 손해를 보는 부정적 상황에서 본 모
습이 나타난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모든 사람들이 성인군자와 같다. 하지
만 역경이 닥쳐오면 그 때 그 사람의 인품이 드러난다. 수행은 그와 같은
분노의 상황이 닥쳤을 때, 다시 말해 상황이 나빠졌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내면의 평화를 지키는 지혜이자 기술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혜능 대사는 “마음 씀씀이를 허공처럼 넓게 쓰라[心量
廣大 猶如虛空].”고 타일렀다. 역경계를 만났을 때 마음을 허공처럼 넓게 가
져야만 부정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잘
써야 하는데, 그런 작용을 『단경』에서 ‘심량深量’이라고 했다. ‘마음의 헤아
림’이라는 뜻이다. 부정적 순간이 닥쳤을 때 마음으로 그 상황을 어떻게 헤
아리는가에 따라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고, 일생을 짓누르는 응어리가
될 수도 있다.
살다보면 수시로 부정적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때 마음의 헤아림
을 크게 하면 불쾌한 상황에 현혹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매 순간순간
만나는 부정적 상황에 감정이 속박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고해를 건
너가는 바라밀이다. 부정적 상황은 짧지만 그로 인해 촉발된 분노의 해
악은 길다. 순간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지속적인 고통이 되고, 날카
로워진 감정은 작은 일에도 폭발하며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
때 ‘복수는 나의 것’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분노와 일생을 맞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매순간순간 만나는 상황에 자극받지 않고, 내
면에 원한을 키우지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삶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헤아림이 허공처럼 넓게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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