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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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존재하므로,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측정 장치에 따라 정확도가 다른 기
술을 해야 한다. 측정 장치의 한계로 인한 오차를 고려하지 않으면 측정치
는 이미 그 자체로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1mm의 눈금자로 길이를 재면
서 12.34mm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틀린 진술이다. 측정 장치의 한계
때문에 오차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확도의 한계를 밝히지 않으
면 안 된다. 이는 물리학의 정확성이 오차 범위 안에서 성립한다는 것이
다. 대상에 대한 파악은 대상 자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대상의 드러남은 관측자의 역량에 의해 제한된다.
달리는 기차 안의 찻잔 이제 관측 장치의 정확도나 관측자의 역량과
무관하게 관측치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여기엔 두 사람
의 관측자가 등장한다.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차를 마신다고
하자. 찻잔의 속도는 얼마인가?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차 밖에
있는 사람이 볼 때, 찻잔은 기차와 함께 시속 100km로 달려간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사람에겐 찻잔이 정지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마실 수
없다. 두 사람이 한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한다. 누가 맞는가?
기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찻잔이 100km로 날아간다면, 찻잔은 생명
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차를 마시려면 정지해 있어야 한다. 기차 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찻잔이 정지해 있다면, 이는 기차가 간다는 사실을 부정
하는 것이다. 찻잔은 시속 100km로 달려가야 한다. 그러면 어느 것이 맞
는가? 정지와 운동이라는 서로 배타적인 두 진술을 조건 없이 모두 맞는
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두 진술을 옹호하려는 오
류다. 이와 달리 정지와 운동 중의 어느 하나를 고집할 수도 없다. 어느 것
을 택하든, 부정할 수 없는 다른 상황을 무시하는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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