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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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살필 수 있어 조선불교가 지닌 이중성
                                    과 그 종교적 정체성을 검토할 수 있다.
                                      대체로 조선의 불교는 임진왜란 이후부

                                    터 전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스

                                    님들의 전란 참여가 계기가 되어 사회적으
                                    로 우호적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이것은
                                    불교정책에도 영향을 미쳐 불교를 객관적

                                    으로 평가하거나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기

                                    도 했다. 『정조실록』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조실록』(사진  1)은  정조가
          사진 1. 『정조실록』 표지.
                                    1776년 3월10일에 즉위해 1800년 6월28일
          에 죽기까지 24년 4개월간에 있었던 정치·외교·국방·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순에 따라 편년체로 서술한 것이다. 56

          권 56책으로, 정식 이름은 ‘정종대왕실록正宗大王實錄’이다. 정조는 1759
          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요절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 뒤에 진종眞宗이 됨)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승려들에게 입번을 면제하는 대신에 번전을 징수하는 것은, 바로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 그들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시는 성덕聖德에

              서 나온 것이다. 옛날에 승려들을 징발하여 입번시킬 때에, 승려
              한 사람이 장비를 준비하는 데 온 절간의 재산을 다 기울이고, 기
              물을 팔고 토지를 팔고 이웃에게서 징수하고, 친족에게까지 징수

              하기도 하였다. 암행어사의 계달啓達과 도신道臣의 장계에서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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