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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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고통을 보고하는 것 중에 걸핏하면 이것을 가지고 말을 하였었
                  다. 이리하여 임금의 뜻에서 결단하고 번전으로 입번하는 것을 대
                  신하게 하여 6도六道의 승려들로 하여금 모두 안도하고 사는 즐거

                  움을 누리게 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시행하였으나 이로운 점만 있

                  고 해로운 것은 없었다. 성교聖敎가 만일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
                  는 일에 미치면 양역良役까지도 함께 말씀하였는데, 이것은 내가 곁
                  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직접 들어서 지금까지도 잘 외우고 잊지 않

                  고 있는 일이다. 근래에 승려들의 힘이 어느 곳에서나 다 조잔凋

                  殘하였기에 쓸데없는 비용은 옛날에 비하여 거의 완전히 감면시킨
                  것과 같으나, 번전을 마련하여 낼 길은 지금에 와서 더욱더 어렵고
                  힘들게 되었다. 혹은 절은 있어도 징수할 만한 승려가 없고, 혹은

                  승려는 있어도 독촉하여 내게 할 돈이 없으며, 심지어 마을의 평

                  민平民들이 승려의 신역身役을 대신 부담하게 되었으니, 한두 해 만
                  에 수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조실록』 정조 9년 2월1일조에서)



               경상도 관찰사 이병모李秉模가 올린 건의 사항에 대한 정조의 답변이다

             (사진 2). 관할지역인 경상도의 사찰과 승려들이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수
             비하는 부역을 감당하느라 유서 깊은 절이 비고 승려들이 도망간다는 것이
             다. 조선은 국방을 강화하고자 인조 대와 숙종 대에 스님들을 동원하여 산

             성을 쌓고, 각각 350명의 스님들에게 경비를 맡게 하였다. 이것이 ‘의승입번

             제義僧立番制’다. 그러나 입번으로 사원경제가 피폐해지자 영조 대에는 돈으
             로 번을 대신하는 ‘의승번전제義僧番錢制’로 변천되었다. 그러나 스님들의 가
             혹한 부담은 줄어들지 않아 지역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정조는 “승

             려들이 쇠잔해져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 거북이 등에서 털을 깎아내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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