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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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한다. 이를 반야계 사상의 근
간을 이루는 이론이라고 본다. “여
기서는 반야바라밀이라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대신 다른 여
러 가지 문자를 사용해도 좋다. 이
것을 공식화하면 ‘A는 A라고 하는
사진 3. 스즈키 다이세츠, 『相貌와 風貌 - 鈴木大拙寫
것은, A는 A가 아니다, 그러므로 眞集』에서 1.
A는 A이다’는 것이다. 이것은 ‘긍정이 부정이며, 부정이 긍정이다’는 것이다.”
미진이 미진이 아니기 때문에 미진이다. 32상이 32상이 아니기 때문에 32상
이다. “모든 관념이 부정되고, 그것으로부터 또한 긍정으로 돌아온다.” 이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세계이며, 이를 영성적 직각直覺이라고 한다.
그의 평생의 삶을 관통한 근대역사는 서양에서 왕권과 종교를 해체하고
나온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의 사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유
에 의한 과학, 소유와 지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한 자본주의가 일
본을 비롯한 동양의 전통을 초토화시킨 냉혹한 현실이었다. 당연히 무너
질 것은 무너져야겠지만, 대량살상을 동반한 인간의 분열된 의식은 서양
문명의 야만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스즈키는 그 원인을 주객, 물
심, 자타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서양 문명의 한계에서 찾았다. 상대화, 차
별화시키고, 정복해야만 하는 인간성의 분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는 동양의 주객미분, 부모미생전의 소식에서 해법을 찾았다. 무분별의
분별, 자기부정의 엄격한 과정을 거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존재 자체
의 절대성에 대한 무한 신뢰야말로 인류와 문명을 구하는 원천이라고 본
것이다. 헤겔 철학과 선불교를 융합하여 본격적 철학을 시도한 교토학파
의 거두 니시다 기타로가 주장하는 순수경험에 기반한 절대모순적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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