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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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의 논리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반야의 논리는 영성의 논리다. 또한 횡
초橫超의 경험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한
다. 횡초는 일본 최대종파인 정토진종의
조사 신란親鸞이 사용한 용어다. 타력정
토문의 절대타력을 말한다. 아미타불 본
원의 힘으로 미혹의 세계를 즉각적으로
벗어나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다. 시각始
覺이 아니라 본각本覺에 의한 돈오돈수처
사진 4. 스즈키 다이세츠, 『相貌와 風貌
- 鈴木大拙寫眞集』에서 2. 럼 바로 이 자리가 무한 절대의 자리임을
깨우치라는 것이다. 스즈키는 동양인의
원융자재, 사사무애의 세계야말로 지각의 극치라고 본다. 동양적 안목을 갖
춘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전 세계에 그 사명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나아가 17세기 활약했던 반케이 요타쿠盤珪永琢 선사의 불생선不生
禪이야말로 영성적 자각이라고 보았다. 불생불멸의 영성을 말하는 것이다.
스즈키는 “자네들이 그렇게 도망가고 싶다고 하는 생사라는 것은 어디
에 있는 것인가. 벗어나고 싶다는 계박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누가 자네들
을 묶고 있는 것이 있는가. 누가 자네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이 있는가.”라고 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역습해 오는 것이 선 논리의 특성
이라고 한다. 마침내 “법성法性의 공空은 바로 일상에서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인사를 나누는 곳에 있다. 즉, ‘평상심시도’에 눈뜨지 않으면, ‘깨닫
고 헤맨다’는 쓰라린 체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념으로 무념, 염념불가
득의 소식을 뚫어야 처음으로 ‘너를 위해 마침내 안심시켜주겠다’는 달마
의 절대 긍정이 나오는 것이다.”(『동양적인 견해』)라고 한다. 우주적 법신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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