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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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조선시대, 특히 후기는 쇠퇴와 부정의 올가미를 씌우기에 적합한 시기
였고, 유교는 타파해야 할 타자의 전형, 그로부터 억압받은 불교는 어찌 보
면 동정하고 구제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카하시는 유교와 불교의 관계를 계속 주시했는데, 유불 교체와 그 연
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가 쇠약해진 것은 유학의 발흥 때문
이다. 고려 유학은 윤리와 훈고의 학문으로 철학적 성격이 약하였고 불교
가 철학 및 우주 문제까지 다루었다. 하지만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유학이
고원하고 심오함에서 처음으로 불교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주
자의 학문적 근원은 불교에 있었는데 그는 선학을 좋아했고 『대승기신론』
의 철리를 얻어서 송대 유학의 여러 학설을 집성해 불교의 취지와 유교의
문자로 설명하였다. 조선의 유학자는 이러한 주자학 발달의 역사를 모르
고 불교사상을 채굴한 주자를 본래의 유학으로 여겨서 존숭해왔다.”
또한 그는 조선에서는 정치가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경제, 도덕, 종교 등
은 그 아래 종속되어, 정치가 한 번 부패하고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진보
발달이 동력을 잃고 나쁜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정치 우위의 전통과 정
치적 종속성을 조선의 중요한 특징으로 규정하고 모든 문제를 유교정치의
전횡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의 상층과 중류 가정에서 표면
적으로는 유교의례를 시행했지만 공덕을 기원하는 불사와 복을 비는 무속
이 풍속으로 행해졌다고 하여, 이것이 바로 조선 신앙문화의 이중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지식계급의 남자는 유교, 여자와 촌민들은 불교 및 무격을 믿
으며, 한 가정 내에서도 이중의 습속이 형성되어 불교와 무속의 범위가 유
교 신앙문화의 몇 배에 달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다카하시는 의타성과 고
착성, 정치적 종속성에 이어 유교와 불교(무속)의 이중성을 한국 종교문화
의 특성으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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