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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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에 수재 시험에 합격하고 18세에 거인이 된,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
          불리는 명민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양계초가 소년 시절을 보낸 중국의
          1870년-80년대는 아편전쟁을 겪은 뒤 중국의 정치나 사상은 유지하면서

          서양의 군사기술을 배우자는 양무운동洋務運動이 전개되던 시기이다. 양계

          초 역시 그 시기의 다른 중국 청년들처럼 어려서부터 사서오경을 읽으며
          과거를 위한 공부를 하다가 18세의 양계초는 당시 광서제에게 변법(變法:
          제도개혁)에 대한 상소를 올렸다는 강유위(康有爲, 1858-1927)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까지 훈고학과 사장학에 몰두했던 양계초에게 강유

          위는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청산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양명
          학과 함께 개략적인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 양계초는 비로소 “생애 처음
          으로 세상에 학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강유위의 삼세설과 무술변법운동


           양계초의 스승인 강유위는 유가 사상을 이용하여 제도개혁을 주장했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 것이 당시 중국을 구

          제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공자의 『춘추春秋』가 실은 미래의 제도개혁을 위
          해 쓴 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강유위의 주장에 의하면, 공자는 세상이 거
          란세據亂世에서 승평세升平世로 진화하고 승평세에서 대동세大同世로 진화

          한다고 예언했으며, 사람은 그 시대의 변화를 알아채고 각각의 세상에 맞

          는 제도로 개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삼세설三世說에 의하면, 거란세는
          군주제의 시대이며 승평세는 입헌군주제, 대동세는 민주제의 시대이다. 강
          유위는 당시 중국을 승평세라고 판단했으며, 따라서 중국은 군주제를 청

          산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보았다. 강유위는 이같은 주장을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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