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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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실현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현존의 국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혁
          명이 자신의 사업은 아니라는 것이며, 정체 방면에서 이상의 실현을 추구
          한다는 것은 이상은 공화제로 두더라도 반드시 현재 상태에서 공화정을 추

          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술변법시기의 그의 정치적 주장은 스승 강유위와 공유하는 것으로서
          입헌군주제의 수립이었다. 일본에 망명 후 ‘신민설’을 통해 전개된 그의 입
          장은 공화제에 가까운 것이었다. 실제로 민주공화제의 수립을 추구하는 혁

          명파와 접근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곧 그는 다시 입헌군주제의 입장으로 돌

          아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발 더 후퇴해 중국인들이 공화국의 국민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출 때까지 개명된 군주에 의한 전제를 채택하자고 까지
          주장했다. 역시 일본에 근거지를 두고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를 발족시킨 혁

          명파와 대결할 시기, 즉 1905년을 전후해서 양계초의 계몽가로서의 주도

          권은 혁명파에게 넘겨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양계초는 개명군주제를 주장
          하는 보수로 전락했으며, 실제로 중국은 신해혁명을 거쳐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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