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9 - 고경 - 2021년 4월호 Vol.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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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니며 교화함에 힘썼으므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알 수 없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달마가 “150여세”라는 것은 양현지楊衒之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서
5)
언급된 것 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달마는 후대에 이르러
수많은 전설들이 부가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것들이 양무제梁武
帝와의 문답, 혜가의 단비구법斷臂求法과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보리유지菩提
流支에 의해 여섯 차례에 걸쳐 독살되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
한 일들이 발생했다는 전문傳聞이나 자료가 있었다면, 도선이 분명하게 언
급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달마-혜가계가 당시 불타-승조계
의 정학으로부터 상당한 견제와 박해를 받았다는 것은 명확한 역사적 사
실이라고 하겠고, 후대에 동토東土의 초조初祖로서 추앙되면서 그러한 역사
적 상황에 스토리텔링을 부가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달마의 법을 계승한 이는 바로 혜가이다. 도선은 달마-혜가계의 전기를
찬술하면서 “비문碑文에 (이들의 행적이) 드물게 보이며, 가르침도 전해지지
않는다.” 라고 한탄하고 있듯이 이들에 대한 자료가 상세히 전해지지 않는
6)
다. 그렇지만 혜가의 전기에 따르면, 혜가는 나이 40세에 달마를 만났으며,
“달마가 낙수洛水 물가에서 멸화滅化하자”, 혜가는 몸을 숨겼으나 수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그를 찾아와 법을 물었다고 한다. 후에 동위東魏 천평天平
연간(534~537)에 신업新鄴 지방에서 비원祕苑을 열어 법을 설하자 많은 호
응이 있었다. 그에 따라 당시 그곳의 정학으로 유명한 도항道恒은 사람을
4) 앞의 책, “錄其言誥卷流于世. 自言年一百五十餘歲, 遊化爲務不測于終.”
5) [元魏]楊衒之撰, 『洛陽伽藍記』卷1(大正藏51, 1000b), “時有西域沙門菩提達磨者, 波斯國胡人也. …… 自云
年一百五十歲歷涉諸國.”
6) [唐]道宣, 『續高僧傳』卷16(大正藏50, 552b) “碑記罕聞, 微言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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