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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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를 말끔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업을 숨길 수 있
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번뇌와 고가
생겨난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부정해야 하고, 거짓말로 꾸며내야 하고, 기
억에서 자신의 삶을 지워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덮고,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로 꾸며대면서 나타나는 번뇌가 바로 부覆와
광誑이다.
성철 스님은 부심소에 대해 “자기 허물을 덮는 것이니, 허물이 있을 때
남이 알까 싶어서 덮어 숨겨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광에 대해서는 ‘속
이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의 설명처럼 부覆는 한자의 의미 그대로 ‘숨김’, ‘덮
음’, ‘허물 감추기’를 뜻한다. 자신이 행한 잘못이 드러나면 명예가 실추되
고, 지위와 재산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워 자신의 행적을 감추는 것이다. 그
러나 거짓말로 타인을 숨길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겉으로 아니라고 부정해도 행여 그것이 들통 날까봐 내심으로 불
안하고, 과거의 삶을 후회하며 번뇌에 시달리게 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부심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이익과 명예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恐失
利譽] 감추려 드는 것이 본성이다[隱藏為性]. 숨기지 않음을 방해하
며[能障不覆] 후회하면서 괴로워함이 작용이다[悔惱為業]. 죄를 숨기
는 사람은 훗날 반드시 후회하고 괴로워하며[後必悔惱] 마음이 평온
할 수 없기 때문이다[不安隱故].”
설명한 바와 같이 부심소는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이익과 명예를 잃어
버릴 것이 두려워 죄과를 숨기려는 마음작용이다.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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