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고경 - 2021년 5월호 Vol.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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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가면서 그의 소설을 써갔다. 1935년 발표
          한 「화랑花郞의 후예後裔」(1935)로 시작하여 「산화山火」(1936), 「무녀도巫女圖」
          (1936), 「바위」(1936) 등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조선 문단의 새 지평을 여는 주

          인공으로  떠오른 것도 이 시기였다. 1960년대 발표한 소설 「등신불」도 이

          곳 다솔사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최범술 선생은 다솔사의 앞 동네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하기까지 60여
          년을 이곳에 머물면서 활동하였다. 그는 특히 일제식민지 시기에 일본차가

          성행하고 우리 차의 맥이 끊어지는 것을 걱정하여 다솔사 인근에 자생하

          던 차나무에서 씨를 받아 절 뒤쪽 비탈에 차밭을 가꾸어 우리 차를 다시
          살리고 차도茶道를 새로 정립하는 활동도 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차를
          마시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고 다솔사 인근에서 자라는 자생 차나무의

          잎을 따서 차로 만들어 끓여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유학

          하던 시절 일본에 차가 생활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의 전통 차와 차의
          역사, 차도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초의草衣 선사(1786-
          1866) 이후로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한국 차도를 다시 살려내고자 다솔

          사에 차밭을 일구고 차를 법제法製하고 차를 마시는 법을 정립하였다. 초

          의선사가 저술한 「동차송東茶頌」을 처음 소개하고 번역하여 대중에게 알리
          면서 중국에 당나라 육우(陸羽, ?-804)의 「차경茶經」이 있다면 이 「동차송」
          은 한국의 차경이라고 그 위상을 정립하였다. 그는 효당본가曉堂本家에서

          증차법蒸茶法으로 만든 이 차를 ‘반야로차般若露茶’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간에 다솔사를 방문하던 차 동호인들로 차석茶席을 가지던 일을 체계화
          하여 1977년 국내 처음으로 차도를 추구하는 전국적인 모임인 ‘한국차도

          회韓國茶道會’를  발족시켰다.  서울지회장은  청사晴斯  안광석(安光碩,  1917-
          2004) 선생이, 부산지회장은 오제봉 선생이, 광주지회장은 의제毅齋 허백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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